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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태 타이거즈의 기억.
    쓰기/추억 2017. 11. 3. 02:14

    KIA 타이거즈가 2017년도에 11번째 우승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우승횟수이며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번도 지지 않은

    11전 11승을 거둔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뭐 그냥 자연스럽게 야구장을 가게 됐고

    또 자연스럽게 KIA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와 몰락하는 모습을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레전드라고 한다면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선동렬이라는 투수를 많이 꼽는다.

    KIA로 지도자로 돌아와 흑역사를 남기고 떠나긴 했지만

    선수시절 선동렬이라는 투수의 존재는 어마어마 했다.

    타이거즈의 영결번호 두명중 한명.



    하지만 개인적으로 어려서 맨처음 가장 좋아했던 선수는 김봉연 이라는 선수였다.

    그냥 홈런을 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프로야구 초대 홈런왕이기도 하다.



    그 다음 생각나는 선수는 타격폼이 일명 오리궁뎅이 타격폼이라고 불리웠던

    정말 독특한 타격폼을 가졌던 김성한 선수.

    김응룡 감독의 후임으로 해태타이거즈의 감독을 했으며 KIA에 인수되어서 계속 감독직을 수행하다

    나중에 성적부진과 불미스러운 폭력사건에 휘말려 중도 경질되었던걸로 기억이 된다.

    하지만 대단한 타자였던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정후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타이거즈의 영결 번호 2명중 나머지 한명인 이종범.

    뭐 말이 필요 없었던 선수.



    고 김상진 선수.

    97년도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완투를 하기도 했다.

    차세대 에이스로 떠올랐지만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사망을 한 비운의 투수.

    지금도 완투승을 거둔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투수 임창용.

    올해 이호준이 은퇴를 하면서 해태 타이거즈 출신의 현역 선수는 이 선수 이외에는 남지 않을 것 같다.

    이 선수가 삼성에 돈으로 팔려 가면서

    한동안 야구를 끊게 만들었는데

    도박사건에 연류되면서 삼성에서 방출을 당하게 되었고

    결국 고향팀인 KIA 타이거즈에서 영입을 하게 되었다.

    이 선수의 해태 시절의 전성기 당시 공은 누구도 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은 공을 던졌고

    지금도 나이가 40이 넘었다는게 믿겨지지 않는 구속의 공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삼성에 양준혁과 트레이드 됐을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었다.


    마지막으로 11번의 우승중 9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김응룡 감독.

    한화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아 현장의 마지막은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타이거즈의 최고의 레전드 감독인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 타이거즈의 영결이 되지 않는지 조금은 이해가 안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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